태국/태국문학

태국 문학계 아버지 : 순턴푸(สุนทรภู่)

말리네 2022. 2. 10. 01:01
728x90

 

순턴푸의 본명은 “푸”이고 관직에 나가면서 왕에게서 하사 받은 공식 관직명은 “프라순트라워한(พระสุนทรโวหาร)”이다. 태국인들은 본명을 붙여 “순턴푸”라고 부르며 사랑한다. 현재는 라따나꼬신 왕조(짜끄리 왕조) 성립 4년째 되는 해에 태어난 순턴푸는 라마 4세가 바우링 조약을 맺은 다음 해인 1856년에 사망했다.

순턴푸가 두 살도 되기 전에 부모가 이혼했다. 이혼 후 아버지는 출가해서 지금의 라영으로 내려갔으므로 순턴푸는 쫑꼰 공주의 유모가 된 어머니를 따라 어려서부터 궁(왕랑)에서 살았다. 태국의 왕궁은 짜오프라야 강을 통해 들고 나서는 배와 선원(태국인, 동양인, 서양인)을 지켜보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소문을 접했을 것이다. 그는 왕랑 근처의 왓치빠카우 사원에서 사미승으로 출가해 공부했는데 매우 총명하고 시문에 능해서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환속한 후 한때 농림성 관료로 근무했으나 시문에만 뜻이 있었기에 관직을 떠나 어머니와 생활했다. 이 시기에 몇 작품을 남겼으며 같은 궁에 있는 “짠(จัน)”과 사랑하게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짠”이 모시고 있던 공주가 사망하면서 순턴푸는 방면되었다. 그 후 출가할 생각으로 아버지가 승려로 있는 끌랭(라영)으로 갔으나 병이 나는 바람에 출가를 포기하고 방콕으로 왔다. 병에서 회복된 후 빠톰웡 왕자의 시종이 되었다. 짠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글과 노래를 잘하는 그에게는 여성이 많이 따랐고 음주벽도 있어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결국 그는 극단과 어울려 펫부리에서 활동하다가 1813년경에 다시 귀경했고, 시재를 인정받아 시를 좋아하는 라마 2세의 사서장(시 자문, 왕문도서관 소속)이 되어 운문 문학의 황금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다. 이때 궁정 시인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이나오>와 <상텅>, <쿤창과 쿤팬의 이야기> 제작 과정에서 후에 라마 3세가 된 쩨사다버딘 대군과 반목했다.

1824년 쩨사다버딘 대군이 라마 3세로 즉위하자 과거의 반목이 빌미가 되어 순턴푸는 관직을 떠났고 마침내는 호구지책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되어 아들 둘(짠과 님에게서 얻은 아들 팟과 땁)을 데리고 출가했다. 이후 18년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승려 생활 중에도 주체할 수 없는 시흥을 어쩌지 못해 여성을 시문에 담고 음주를 하는 등 승려로서의 규율을 지키지 못했다. 그의 시재를 아까워하고 왕과의 반목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환속할 수밖에 없었다. 환속 후에는 자신과 아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결국 그는 아들을 데리고 쪽배를 마련해 행상을 하면서 잔칫집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팔아 연명했다. 태국인으로서는 가장 밑바닥 삶을 살면서 목숨을 간신히 부지했다. 1842년에 압선 수단텝 공주의 추천으로 시가를 즐기는 이사렛랑산 대군의 가객이 되면서 생활이 안정되었고, 이때 대군을 위해 <프라아파이마니>를 봉헌했다. 1851년 라마 4세가 즉위한 후 대군의 호의로 관직에 다시 등용되었다.

그는 평생 많은 여성을 곁에 두었다. 그가 남긴 9편의 기행시<니랏>에 나오는 여성의 이름은 모두 순턴푸의 여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다고 하며 그 여성들 사이에서 아들 팟(짠이 낳은 아들), 땁(님이 낳은 아들), 너이(므앙이 낳은 아들) 등 대여섯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팟이 출가했다는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 다른 자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출가할 때 데리고 다녔던 팟에 대한 기록도 없다. 태국에 인쇄기가 들어온 후 서양의 스미스 인쇄소에서 순턴푸의 작품을 인쇄해 시판했는데 인세를 자손에게 주려고 수소문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럿 두었다.

순턴푸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기행시로는 <니랏> 9편이 있다. 니랏 중 <니랏 푸카오텅>이 태국 내 니랏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외에 서사 문학으로는 <프라아파이마니>, <코붓>, <락사나웡> 등이, 전통 무용 극본으로는 <아파이누랏>이, 속담집으로는 <사와사디락사>, <수파싯 선잉>, 세파로는 <쿤창과 쿤팬 이야기> 중 일부, 그리고 뱃놀이용 노래로는 <헤르아 까끼>, <헤르아 프라아파이마니>, <헤르아 코붓> 및 <헤르아 짭라밤>이 있다.

 

'태국 > 태국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국문학 : 라마 2세  (0) 2022.02.10
태국문학 : 라마 1세  (0) 2022.02.10
태국의 시대별 문학 작품의 특징  (0) 2022.02.10
태국 문학이 받은 영향  (0) 2022.02.10
태국 문학의 가치  (0) 2022.02.10